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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와 교육
정가
판매가
지은이
마셜 B. 로젠버그
옮긴이
정진욱
출판사
한국NVC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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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제공 서평
한국NVC센터(한국비폭력대화센터)에서 발행하는 ‘비폭력대화 작은책 시리즈’ 일곱 번째 책. 『비폭력대화』의 저자 마셜 로젠버그가 교사와 학생이 공감을 통해 상호 이해에 도달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
미국의 한 대안교육자 총회에서 한 기조연설과 워크숍을 통해, 마셜 로젠버그는 공감적 연결에 바탕을 둔 교육에 관한 그의 생각을 밝힌다. 마셜은 처벌이나 보상, 죄책감, 수치심 같은 강압적인 수단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기에는 배움이란 너무도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삶을 존중하는 마음,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려는 욕구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는 배움이다. 사람들이 삶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배움에 참여하도록 돕는 언어를 마셜은 ‘비폭력대화’라고 부른다. 우리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고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에 공감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비폭력대화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에 관심을 가진 모든 교육자들에게 소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공감으로 연결하는 교육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깃든 힘을 이끌어 내도록 돕는다.
-학급 공동체 안에서 신뢰와 유대감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학업에 대한 학생의 흥미와 관심을 강화하도록 돕는다.
-강요 없이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다.



■ 지은이
마셜 B.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 1934~2015)
국제 평화단체인 비폭력대화센터CNVC의 설립자이자 교육 책임자. 1934년 미국 오하이오 주 캔턴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했으며, 1961년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에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이루어진 학교 통합 프로젝트에서 중재와 의사소통 방법을 가르치면서 처음으로 비폭력대화NVC 교육을 시작했다. 그가 1984년 설립한 CNVC는 지금까지 500여 명의 국제인증지도자를 배출하였고, 전 세계 70개가 넘는 나라에서 교육자, 의료 분야 종사자, 기업 관리자, 변호사, 군인, 수감자, 교정 당국, 경찰, 성직자, 정부 관리, 그리고 수많은 개인과 가족들에게 NVC의 실천을 지원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A Language of Life』, 『갈등의 세상에서 평화를 말하다Speak Peace in a World of Conflict』,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Life­Enriching Education』 등이 있다.



■ 옮긴이
정진욱
오스트레일리아 매콰리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수료한 후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2009년 우연히 CNVC 국제심화교육(IIT) 통역 자원봉사를 한 것을 계기로 한국NVC센터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영성과 명상에 관심이 많으며, 비록 더디더라도 멈추지 않고 비폭력대화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 차례

제1장 가슴의 언어
들어가며
자칼과 기린
관찰 vs. 평가
함께하는 힘
처벌과 폭력
느낌 목록
욕구
부탁 vs. 강요
느낌과 욕구 듣기?공감적 연결
호기심과 그린 젤?오
요약

제2장 가슴으로 하는 대화
들어가며
보호를 위한 힘
비판하지 않기
우리의 목적
느낌과 욕구 듣기
현존이라는 선물
명료한 부탁 하기
메시지가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하기
어떻게 감사가 판단처럼 느껴질 수 있는가
요약

부록
느낌말 목록
보편적인 욕구 목록
NVC를 적용하는 방법
CNVC와 한국NVC센터에 대하여
한국NVC센터 발행 서적ㆍ교구




■ 책 속으로

저는 삶을 존중하는 마음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는 배움,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더 잘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새로운 것들을 배우려는 욕구에 따른 배움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를 큰 슬픔으로 채우는 것은 강요에 의한 배움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강요란 학생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적이라는 형태로 제공되는 보상을 받기 위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 또는 뭔가 막연한 ‘해야만 한다’는 느낌 때문에 배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강제적인 방식으로 동기를 부여받기에는 배움이란 것이 너무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선생님들께 자칼 말로는 절대로 학생들의 성과를 평가하지 말 것을 제안합니다. 교사로서, 우리의 의식에서 다음 단어들을 없애버립시다.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 배우는 게 더디다, 배우는 게 빠르다. 이것들은 위험한 언어입니다.

사람들이 비판과 부정적인 판단을 듣도록 훈련시키면, 어떤 배움이건 뒤로 미뤄 둔 치과 진료만큼 괴로운 일이 됩니다. 우리가 영리하건 멍청하건 옳건 그르건 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비판을 듣거나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심각한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 자신을 아름답다고 보지 않게 되지요.

비폭력대화는 힘 개념, 사람들과 함께하는 힘이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이유가 ‘그것이 어떻게 삶을 풍요롭게 해 줄지’를 보았기 때문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내면으로부터 동기부여가 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가질 때, 그것이 바로 함께하는 힘(power with)입니다. 반대로, 지배하는 힘(power over)은 사람들이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을 때 치러i 할 대가를 두려워하거나 우리의 기대에 부응했을 때 우리가 주는 보상을 바라서 어떤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제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배울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평가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비폭력대화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내포하는 언어나 암트스프라헤가 아닌, 가슴의 언어를 사용해서 사람들의 행동을 평가할 것을 제안합니다. 가슴의 언어를 쓰려면 느낌과 욕구를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 우울, 죄책감, 수치심이라는 느낌들 모두가 비폭력대화를 하는 사람에겐 아주 소중합니다. 왜 소중할까요? 우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 느낌들이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정말로 우리 주의를 두어야 하는 곳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주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비폭력대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욕구에 두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제가 그동안 사랑에 대해 배운 바-그것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여러분과 나누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러분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만큼 사랑을 표현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이란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메시지를 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 그것에 사랑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살인자라고 부르면 저는 무엇을 듣나요? “나를 아름답게 보아 주세요.” 사람들이 그들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가장 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표현할 때, 그들은 우리가 그들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아 주기를 가장 절실히 원하고 있습니다. “나 좀 내버려 둬, 멍청이.”라고 말하는 학생처럼요. 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학생처럼요. 그때가 그들이 공감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할 때입니다. 비폭력대화의 나머지 절반, 즉 받는 것을 공감적 연결이라고 부릅니다. 교육 목적으로 약간 시각적으로 표현했는데, 사실 그것은 공감이라는 아름다운 개념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모든 메시지에 공감으로 대응하는 법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욕구와 느낌을 표현하고 우리의 욕구를 부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더해서 비폭력대화는 또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의 표현으로서 우리에게 오는 모든 메시지를 듣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공감으로 연결’할 것을 요구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비폭력대화는 매 순간 우리 으식의 초점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내면의 아름다움에 두는 방법입니다.

비폭력대화에는 제가 아직 언급하지 않은 아주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상대방으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비폭력대화가 아닙니다. 그래서 앞의 세 살짜리 아이의 경우, 우리의 목적은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욕구가 충족되도록 하는 연결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